자연속에 묻혀 살며/어쩌다 쓰는일기

14.11.29(토)-이한희친구 며느리 본다기에 고향집도 들리고...

청룡산삼필봉 2014. 11. 29. 22:30

윤달이 있었기에 한동안 잠잠하던 혼사가 이제 여기저기서 터진다.

지나간것만도 2건이고 받아논게 또 하나에 마누라몫까지 합하면 다섯건이 넘는다.

계속해서 얼마나 생길지...

 

예전엔 마음으로 축의를 했기에 금액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도 않았는데

이젠 마음보다 금액이 더 중요시되고 나도 언제부터인가 받은 청첩장에

참석여부와 금액도 기록해 두게 되었다.

 

이게 어찌보면 적금이나 채무같은 것이라서 십년 이십년전에 받았던 금액은

그간의 물가상승율을 감안해서 좀 더 넣기도 하고

같은 동창이라도 특별한 우정이 있다던지 내가 좀 미안한 마음이 드는 친구가 있다면

관례적인 금액보다 조금 더 넣기도 한다.

 

나도 그사이 아버지의 별세와 딸아이의 혼사등 두번의 큰일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살아 계실적에 수많은 대소가의 일을 도맏아 하셧고

구식결혼(전통혼례) 집도에다 흉사에는 그 어려운 절차등을

소상히 지도해 주시곤 하셨는데...

(지금이야 뭐 상조회사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해 주지만

아버지의 세대는 그런게 드물었으니..)

 

아버지 장례후 어머니의 말씀이 아버지가  품앗이 한것에 비하면 절반도 않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런것이 경황이 없어 연락을 못한것도 있고

내가 객지생활을 하다보니 알수가 없는것도 많았다.

 

그건 그렇타손 치고, 직장에서는 직급에 따라 금액이 정해 지는게 관례라서

나같은 경우는 무조건 손해본다.

경조사 비용 가지고 손익 따진다는게 좀 이상키도 하지만

품앗이의 성격이라면 준만큼은 받아야 하는것 아닌가..

 

지금은 한직에 있기에 이름도 모르는 직원이 더러 있지만(모르는건 물론 내 불찰)

그래도  최소한 십만원이 기본이다.

받을땐 오만원이 대부분이고 삼만원도 있었다.

 

나의 직장생활이 여기가 처음이고 마지막이 될거다보니

다른 회사도 그런것인지 사뭇 궁금해서 넋두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ㅎㅎ 글을 쓰다보니 이상한 방향으로....

 

오늘은 고향친구가 큰며느리 보는 날이라

좀 일찍 내려가 고향집에 잠시 들려 홀로계신 어머니와 두어시간 놀아 드렸다.

집사람과 같이가면 주로 고부간에 대화가 많고 나는 그냥 듣고있는 편인데

오늘은 나혼자 였기에 옹골찬 대화였다.

 

그중엔 몇번씩 들은말도 있지만 그래도 그게 싫지 않으니...

어머니라서 그런 것이겠지.

이제 연로하시니 내가 모신다해도 택도없는 말이되고

혼자 계시니 때아닌 시각에 전화만 와도 가슴이 철석거린다.

 

 

 

 

 

 

철길옆에 위치해 있지만 기차는 어쩌다 다니는지라 소음공해 같은것은 없고

요즘 이런곳이 별로 없어서 우리집은 예비신랑신부의 야외촬영 배경이 되기도 한다.

 

 

 

 

아래로 내려가면 사천인데 예전엔 이 길이 삼천포까지 연결되어 있었지만

경제성이 없어서 사천 공군기지까지만 연결되어 있는데 어쩌다 가끔씩 군수물자 수송에 이용되는것 같다.

 

 

고향에 있는 이 연못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조성된 것이라고 하는데 많이 좁혀지고 좁혀져서 현재의 모습으로 되어있단다.

 

 

 

찾는이들이 많다보니 편의시설도 생겨나고...

 

 

 

내 어릴적엔 여름이면 하루에도 몇번씩 멱을 감곤 했었는데 온몸의 솜털엔 물때가 올라서리...

 

 

 

고향마을은 진주강가의 집성촌이고 증조부의 형제분들이 저 정자를 지어셨는데

어릴적엔 저기서 뛰어놀곤 했지만 낡아서 허물고 다시 지은것이다.

연못또한 등기가 되지않은 임자없는 땅으로서 마을의 공동 소유였기에 똑똑한(?) 일가들이

통째로 먹을려고 시도를 하고 돈이없어 유지보수도 못하는등...

그러다가 진주시에서 이것을 알고는 시유지로 넘어가고 공원으로 조성이 된것이다.

 

 

 

이 들녁의 물도 연못에서 내려가고 황량할것 같은들녁이  뭉쳐진 하얀 볏짚으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먹을것이 궁했던 그 시절에는 팽나무의 노란 열매를 따먹기도 했고 여름이면 수도없이 올라가서 왕매미를 잡곤 했었지..

 

 

 

고려시대에 강주진영이라는 군사시설이 있었다는 표시비

 

 

 

600년된 이팝나무로서 4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어있다.

이게 봄이면 잎이 피기전에 하얀꽃을 피우게 되는데 멀리서 보면 크다란 나무에 하얀 누더기를 걸쳐 놓은것 같다하여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헌두디나무"라고 불럿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