꼽사리 여행기-세월은 흘렀어도 친구가 좋아...
사실 어제밤부터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분에 맘이 설래고 밤잠도 설첫었지요.
그때 그시절 운동회를 앞둔 기분이랄지 가을소풍을 앞둔 기분이랄지...
그 증거는 자정이 훨씬넘어 밴드에 올린 잊혀진 계절이란 색소폰 연주가 있습니다.ㅎ
고맙게도 총무국장께서 문자도 주시고 전화도 주시니 덩달아 기분도 좋고
계절이 계절인만큼 여기저기 오라는 곳도 많은데
이날만은 완전히 모든걸 사양했지 말입니다.
우포늪이 첫 소풍 코스인줄은 나중에 알았으니
그기에서 무슨일이 일어 낳는지 나는 모릅니다.
너무 많이 알면 다치니까 알아도 모른척 해야지요 하하~~
평소에는 30여분이면 갈수있는 대가야길이 오늘따라 왜이리 막히는지 말입니다..
시간은 빨기가고 길은 막히고... 말년앞둔 제대병장같은 애타는 마음.
그래도 내가 일찍 도착해서 길목에 차를 세워두고 있는데
아 저기 오륙도 관광버스..
오륙도가 대여섯개라지만 부산말고는 없을터인즉, 필시 친구들이 타고 있겠구나...
얼핏보니 총무국장 서있는 모습 보이네...
크다란 버스 꽁무니따라 졸졸졸 시골길로 들어 서는데
우찌알고 이런 골작의 식당을 예약 했을꼬..
점심식사 먹을만 하네, 소고기 육회도 나오고...
다음에 우리식구와 같이 한번 와야겠다는 생각.
음주도 겻들여 기분좋은 점심식사후 대가야 고분군으로 이동
도로는 한산해도 주차된 차들은 많습니다.
힘좋은 선발대가 먼저 오르고...
본대는 여기저기 살펴보며 따라 옵니다.
내가사는 대구와는 가까운 곳이라 두어번 와 본 곳이지만
이렇게 겁없이 임금님 배위에는 처음 올라 보네요 ㅎ
총 774기의 무덤이라던가...
박물관도 구경하고 44호고분을 원형대로 복원했다는 무덤속에도 들어가 보고...
순장자가 40여명에 20여기의 유골에서 8세부터 50대 중반까지의 다양한 사람들이
왕을따라 순장되었다는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수없는 그시대의 역사가 담겨진 무덤 이지요.
나는 이쯤에서 동창들과 작별할까 했는데 차를 두고 같이가면 버스로 다시 여기까지 대려다 주겠다니
그 큰 버스가 나하나를 위해 우회한다는게 미안키도 하지만 아니갈수 없었지요.
결론적으로 오가는 차속에서 재미가 있었던것은 말을 안해도 아실테고 무영이친구의 역사인물 이야기(?)와
시낭송도 멋졌습니다. 사회를 잘 본다는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와~~정말 대단한 지식과 입담에 박수를 칩니다.
최종 목적지인 해인사에 도착했습니다.
오륙년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 외지 손님들이 와서 약간의 시간이 나거나 하루를 머물게 된다면
해인사로 안내하곤 했었기에 자주 와 본 곳이기도 한데
그때는 업무적인 일이라 별다른 느낌도 없었지만 정다운 동창들과 같이하니 아니 좋을수 없지요.
절을 향해 가는길이 단풍도 멋집니다.
저기 뒷모습의 남자분 얼라앉고 머슴살이 톡톡히 하네요.ㅎㅎ
가야산 해인사...
해인사는 내게 크다란 두개의 추억이 있는데 하나는 수학여행이었고 또 하나는 신혼여행 이었습니다
요즘이야 뭐 신혼여행을 해외로 많이들 가지만 그때는 신혼여행을 가지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고
가까운곳에서 하룻밤을 유하고 오기도 했었는데
그때만 해도 나의 입신이 화려(?)했던 시절이라 제주도를 장기계획하고 모든것을 다 준비 했었는데
혼사 치뤄기 이틀 전이었던가.. 댕기풀이라는 미명하에 몇몇친구를 불러와 고급 술집에서 한톡쏘게 되었는데
남자들은 알겠지만 2차 3차 이런게 있었고 그 마지막차의 종착역은 모텔로 이어지곤 했었지 말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얼시구 좋다 했을텐데 낼모래 결혼앞둔 총각이 외박을 한다는건 아무래도 양심에 거슬려
통금에 걸리지 않을려고 무리하게 운전을 하는 바람에 커브길의 크다란 바위를 들이박고 말았지 말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면허취소가 되고도 남을 음주운전 이었지만 그때는 그런 법이 없었지 말입니다.
지금처럼 음주운전이 엄격했거나 통금이 없었으도 사고는 없었을텐데 말입니다.ㅎ
하여간 그런 사고로 내 자가용 포니는 정비공장에서 대수술를 받게되고
사회를 볼 친구가 박이 깨져서 땜빵사회가 등장했고 내 얼굴도 약간의 상처에
여자 화장품 화운데이션인가 뭔가하는 것을 분장수준으로 떡칠을 한채
웨딩마치를 울리게된 나만의 기쁜날에 기억조차 하기싫은 슬픈역사도 함게 하게된 것이지요
경직된 긴장속에 혼례식을 치루고나니 몸과맘은 만신창이 파김치가 되었으니
제주도 신혼여행은 접어둘수 밖에 없었고(신혼여행 조차 가기도 싫었지만..)
그 대안으로 가까운 해인사를 택하게 된것이었지 말입니다.
(아이구 왜 이렇게 쓰잘떼기 없는 말을...)
스토리를 이을려면 끝없이 나오겠지만 이 쯤해 두고...
그 사건이후 아직도 제주도를 안가본 천연기념물이 되었다는 믿거라 말거나 한 전설이.....
기분전환 전진출발...
저 뒤가 법당인데 돌계단 오름길이 가파르고 힘들게 느껴지는걸 보니 결코 젊다고는 할수없는법.
법당이네요
누가 내게 종교가 무어냐고 물어면 불교라 말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한
어중간한 사람인데 어쩌다 가끔씩 마누라의 절가는길 운전수 노릇은 합니다만
법당속의 부처님께 자진해서 엎드려 절해본 것이 두어번쯤 되려나...
다른것은 부끄럼없이 잘도 드리데는 우째 부처님앞에서 절하는것은
왜그리 쑥스럽고 다들 나의 뒷모습만 쳐다보는것 같은 느낌인지...
하여.. 그냥 서서 목례를 하는 정도인데 대구 갓바위에 무수한 사람들 보면
절을 하면서 입으로 뭐라뭐라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던데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목례만 하면 부처님이 화를 내실까...?
그런데 그 소원을 빌어 본다는게 예삿맘으론 않되는것 같습띠다.
마누라의 절행사에 끌려가서 엄포(?)와 반강제로 절을 수십번 한 적이 딱 한번 있었는데
무슨 소원을 빌기는 커녕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야말로 무념무상속에서 절만 했었지요.
(그때 소원이라도 좀 빌어볼걸...)
여기 계단에 앉아서 수학여행 기념사진을 찍었지 싶은데 맞나요?
지금의 건축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운 장경각입니다.
새들도 위를 날지않고 거미줄도 치지않는다는... 그때 수학여행때 설명 들었었지요 아마..
지금은 들어갈수 없게 통제되고 있지만 그다지 멀지않은 시기에는 들어가서
장격각을 두루 살필수도 있었고 표본으로 전시해둔 경판을 만질수도 있었지요.
할부지들 사진가져 가세요.ㅋㅋ
세워서도 찍었으니 골라골라~~ 하나만..
나도 덩달아 한폼 잡아 봣시다..
성철큰스님 사리탑이네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그 쉬운 말을 아직도 알지 못한채 살아가는 중생이 여기 있습니다.
이 비석들을 보며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내가 이세상에서 사라지는날 화투짝만한 비석이라도 누가 세워줄수 있을지...
비록 한나절을 함께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구들의 따듯한 환대와
즐거운 모습들이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내가사는 고장으로 찾아온 친구들께 내가 대접해야 마땅한것을
얻어먹기만 했으니 미안키도 합니다.
연말엔 또 멋진 송년의 밤을 계획하고 있다니
열일 채켜두고 달려가서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여러 친구들 너무 고맙고 사랑합니다.
언제나 즐거움과 건강이 함께하기를 마음깊히 기원합니다.
잘 보셨나요? 그렇다면 오백원...
오백원이 아깝다고라.....?
그럼 댓글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