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1월 1일-외삼촌댁에 문안세배 드리고 고향집가다
나의 어린 시절엔 음력설 쇠는것을 억제 시키고 양력설 쇠기를 권장한 적도 있었다.
정부 시책이 그렇다보니 음력설은 그냥 평일일뿐 아무런 날도 아니었기에 학교에도 가야했지만
선생님인들 그게 좋을리가 없었기에 차례 지내고 좀 늦게 등교 하는등 공부가 될리도 없고
어물쩡하게 두어시간 앉아 시간 보내고 집에 오곤 했었다.
아무리 억제를 시켜도 수백년의 전통을 없앨수 없었기에
그 후엔 "민속의 날" 이라면서 임시휴일로 지정했던가...
하여간 이런저런 우여곡절끝에 지금은 완전한 대명절이 되었다.
그때 완전 전환해서 양력설을 쇤 가정도 있었지만
이젠 뭐 그런 집이 거의 없는것으로 생각되는데
나의 외삼촌 댁에선 지금도 양력설을 쇠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양력설엔 세배를 가게 되는데
그때 그시절 양력설을 쇠게 된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기 보다는
외삼촌 집의 특수성 때문에 양력설을 쇤다고 보면된다.
왜냐하면 아들은 없고 딸만 일곱이기 때문이다.
세배후
올해의 신정은 3일간의 연휴인지라
고향가서 어머니도 뵙고 하룻밤 유하면서
설장도 봐 오면 싶어서 고향을 향했다.
거실 벽에는 생전에 아버지가 쓰 놓으신 가훈도 있고 좋은 글도 있다.
아버지는 네살때 천자문을 때었다니 지금으로 말하면 영재라고 할수 있겠지...
또한 증조부 께서는 광무(고종)시대에 당상관을 지내 셨고
증조부의 형제가 오형제 였다는데 그중 큰형님은 만석을 하셨으니
집에서 서울까지 남의 땅을 밟지않고 갈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재벌인데 그 직계 후손인 8촌형님 께서는 10년전까지만 해도
생각치도 않는 땅이 불거져 나와 횡재를 하곤 했었다.
윗조상님의 벼슬은 일일이 다 어찌 열거할수 있으랴마는
명문대가의 후손인 나는 사는꼴이 변변치 못하니
훌륭하신 조상님을 거론 하는게 예의가 아닌것 같다.
거실 바닥에는 흑마늘 말린다고 즐비하다.
이 많은 흑마늘을 어디에 쓸건지 보면 뻔하다.
이자식 저자식 나눠 주는게 어머니의 취미 이니까...
물론 사전 연락을 드리고 가지만 그래도 어느 자식이 언제 올지 모르니
냉장고엔 항상 비상술안주감의 식재료가 들어 있다.
오늘은 맛있는 갯장어 구이다.
지난번엔 안보이던 안마의자가 있네.
사위가 장모님의 위해서 사 드린 선물이라 하누만.
내 형편엔 삼사백 하는거 사 드리긴 어렵고
부자 사위가 가까이 살고 있으니 나도 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떡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드러 누워 있으니 스르르 잠이 온다.
오늘의 목적은 설장꺼리 생선구입인데 갖은생선 다 구입하고 잠시 바깥으로 나왔더니만 온천지에 갈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