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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20~21(토,일)-포항 바닷가 송년의 밤 행사와 경주투어

청룡산삼필봉 2014. 12. 20. 22:00

취미로 주말농장을 꾸려본지가 어언 십년이 넘었다.

처음에 아무것도 몰라서 정보 습득차 가입하게된 농사카페가 몇개 되는데

그중에서 두곳에서만 활동하고 있고 나머지는 눈팅이며 그 중 하나의 카페에서

대구근교 회원들만 조촐하게 망년회를 가지면서 한  회원의 별장이 있는

포항 영암의 해변에서 행사가 열렸다.

 

놀고있는 내 음향기기 가져가서 설치하고 어제 회사의 행사에서 입었던 무대복 상의와

나비넥타이를 메고 등장 했더니만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본 회원들이 얼마나 웃던지원...하하~~

아이고 분위기에 휩싸이다 보니 새벽 3시까지...

한 회원의 심한 코골이에 잠은 거의 설치고 기대했던 일출시간도 놏쳐버렸다.

 

또 우리 회원님중에 아주 유명한 문화 해설사가 계시기에

그분이 기꺼이 시간을 내어 경주박물관과 대능원의 해설을 해 주셔서 많이보고 배웟다.

박물관이야 뭐 예전에도 가 봣지만 그냥 한바퀴 빙 도는것은 무의미 할 뿐이고

신라의 시대적 배경과 왕의 승계및 외교관계등 역사시간에도 다 알지못하는 것을

듣고 보니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해설을 주욱 들어면서 서라벌의 인구가 백만이 넘었을것으로 추정하니

그 당시의 도시규모를 상상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듣기좋은 꽃노래도 자꾸 하면 싫듯이 오늘은 기본 두곡에 앵콜 한곡만으로 매듭 지었다.

마음이야 뭐 열곡도 더 하고 싶었지만...

 

 

 

취미가 농사인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그래도 각양각색의 사람이 다 있다보니

이처럼 젊은친구의 멋진춤도 볼수 있었다.

 

 

 

이튼날 경주투어의 첫번째인 박물관의 선덕대왕신종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이 종을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오늘이 신종의 나이가 1244회 생일이란다.

왜 하필이면 추운 겨울에 이 종을 만들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기는데 해답은 간단했다.

농한기를 이용했다는 추측...

여기까지 옮겨오기 까지의 숨겨진 이야기도  있었고 18.9톤이라는 거대한 무게를

손목보다 작은 쇠막데기 한게로 지탱한다는것은 놀라운 일인데

그것을 옮기는도중에 분실하여 포철에서 그것을 만들었는데 계산적으로는 지탱할수 없는무게란다.

결국은 삿삿이 뒤져 그 막대기를 찾아서 분석해보니 수타면 공법 이라는군.

천년전 그 시대에 그런 기술이 있었다니 어쩌면 요즘 사람들보다 머리가 더 좋지 않았을까나...

또한 나는 여기있는 이 종은 가품이며 진품은 더 깊숙히 보관되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고

다른 회원들도 나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진품이라는데 또한번 놀랏다

1200년의 세월이 흘럿슴에도 낡아 보이지도 않고 아주 깨끗하며

세계적으로 코리안벨이라는 고유명사를 가졋다 하니 마음이 뿌듯하다.

 

 

 

 

박물관에는 여러가지 전시품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눈여겨볼게 토기이고

토기의 연대는 신라시대보다 훨씬더 이전부터 신라시대까지 이어져 오는데

새겨진 문양을 보고 그 연대를 알수 있단다.

즉,도장을 찍듯이 무슨 도구로 콕콕찍어서 문양을 나타낸것은 신라것이고

무엇으로 그린것은 연대가 훨씬더 올라 간단다.

 

 

 

금관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2키로가 넘는것을 임금이 평소에 썻을까라는 것이고

이게 모자처럼 이마에 걸리는 것이 아니고 둘레가 크서 턱까지 내려온다고 하니

아마도 사후의 장례용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된다는군.

그리고 앞의 山자가 두개 있는것 세게있는것등 시대마다 조금씩 다르단다.

 

 

 

대능원안에는 20몇기의 무덤이 있는데 발굴한것도 있지만 아직 그대로 있는것이 대부분인데

이것을 발굴하지 않는 이유중의 하나가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것이고

쏟아져나오는 유물을 보관할려면 또 하나의 박물관을 지어야 할 정도라고 하니

안속에는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들어 있을까 짐작이 된다.

또한 능의 위가 뾰족한것도 있고 평평한것도 있고 약간 함몰된것도 있는데

함몰된것은 내부의 공간이 무녀져 내려서 그런 거란다.

 

 

 

경주하면 천마총이 떠오를만큼 유명해진 무덤이다.

경주의 무수한 크고작은 능중에서 크다란 능을 발굴할 것이지 왜 하필이면 아주 작은능을 발굴했을까...

이는 3공시절 박대통령이 말하기를 사우딘가 어디에선 피라밋을 개발해서 많은 관광객을 모우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별 볼것도 없는데 우리도 그렇게 하면 어떻겠는가...

그 당시만 해도 발굴기술이 별로 없어서(지금도 그렇다지만) 큰것은 못 건더리고

시험삼아 작은것 하나를 택해서 발굴하게 되었다는데 이게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와서

더이상 하지않고 이것으로 마무리 했단다.

 

 

 

지금은 시신을 땅을파고 묻지만 그때는 지면을 약간만 파고 평평하게 해서 안치하고

그위에 관을짜고 돌을 쌓고 진흙을 바르고 마사토를 덮고 또 돌을 싸고 이렇게 해서 쌓아 올리는데

500명이 석달동안 한다던가...

이렇게 돌을 쌓았기 때문에 비교적 도굴에서 안전 하단다.

파고 들어가다 돌이 무너져 내리면 볼장 다 보는 거니까...

 

 

 

 

바로 이것이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짓게된 결정적동기이다.

무덤을 발굴해서 소장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할수 있으면 능이라 칭하고

불분명하면 총이라고 한다는데 총을 발굴해서 특징적인게 있으면 그 이름을 따게 되는데

여기 천마총은 자작나무 껍질에 이런 그림이 그려진게 발견 되어서 천마총이라 한단다. 

총 여섯겹이 나왓는데 나머지 다섯겹은 박물관의 수장고에 보관중이라던가...

혹여 다른데서 이런 그림이 발견된다해도 천마총이라 칭하지 않고 다른 이름을 짓게 된다는 것이고

그 예로 경주의 여러 무덤에서 금관이 나왔지만 맨먼저 나왔던 무덤의 이름만 금관총이라 하고

나머지는 또 다른 특색있는 이름을 지엇다고 한다.

 

어제는 내 생일이자 모임하는 날이었고 오늘은 또 경주투어까지 했으니

생일잔치 잘 한 셈이다.